힌두교 가정에서 태어난 '크리스천'

인도 32개주에 32명의 목사 파송 꿈꾸는 우메샤 선교사

▲ 왼쪽이 우메샤 선교사, 오른쪽이 김희병 선교사. 둘은 국적은 다르지만 인도를 복음화해야 한다는 절실함을 가진 것은 같다.

인도는 크리스천에 대한 인식이 그리 좋지 않은 편이다. 아니, 부정적이라고 말하는 편이 맞을 것 같다. 과거 인도를 식민지로 삼았던 영국의 국교가 바로 기독교였고, 그들을 식민통치했던 영국인들이 크리스천이었기 때문이라는 이유가 크다.

우메샤 선교사는 “대한민국의 국민들이 일본에 안 좋은 감정을 가진 만큼 인도 사람들 또한 영국에 한을 품고 있다”며 “인도에서 많은 사람들이 존경하는 마하트마 간디가 ‘예수는 믿되 예수 믿는 사람은 믿지 말라’는 발언을 해 불신이 더욱 큰 상황”이라고 말했다.

우메샤 선교사는 힌두교 집안에서 태어나 줄곧 자신의 신앙이 맞다고 생각하며 자라왔다. 하지만 어느 순간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고 예수님을 영접했다. 어린 시절 마을에 찾아온 전도자의 권유도 거절했고, 심지어는 크리스천들을 핍박까지 했던 그가 이제는 한국인 김희병 선교사와 함께 인도 복음화 계획을 세우고 있다.

너는 내 아들이라
하나님의 역사하심은 그 누구도 예측할 수 없었다. 우메샤 선교사의 경우도 마찬가지다. 가난한 힌두교 가정에서 태어난 그는 우상숭배를 당연시 하는 환경 속에서 자랐다. 24시간 중 절반 이상을 술을 마시며 싸우던 가족들. 그는 어린시절 행복이라는 것이 무엇인지, 기쁨이라는 것이 무엇인지 맛보지 못했었다.

“어릴 때는 하루 한 끼의 식사를 하는 것도 어려웠어요. 그저 인생이라는 것은 고통의 연속이었죠. 소망이라는 것이 없는 삶이었기 때문에 스스로 목숨을 끊을까 생각하기도 했습니다.”

여러 고비를 넘기며 성장했다. 고학의 끝에 대학에 진학할 수 있었다. 그 때 그의 마음 한 켠에서는 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마음 속에서 계속 ‘예수를 믿어라’라는 목소리가 계속 들렸어요. 굉장히 불쾌했죠. 약 2년간 더욱 크리스천들을 핍박했습니다. 괜시리 기분이 나빴어요. 그런 소리가 들릴수록 두려운 마음이 생기기도 했고요.”

인도 정부에서 후원하는 팀에 들어가 공부할 수 있는 기회를 잡게 됐다. 고향을 떠나 한 도시에서 시작된 교육을 받으면서 신기하게도 그의 마음이 변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예수를 믿어야겠다는 생각이 들어 한 교회를 찾았다. 신앙생활을 이어가던 중 중대한 결단을 하고, 2001년 1월 26일. 그는 세례교인이 됐다.

아버지의 외면
세례를 받은 후 다시 고향으로 향했다. 교육도 끝이 났고, 일을 할 수 있는 자격도 갖춰졌다. 무엇보다 사랑하는 가족들에게 복음을 전하려는 것이 그의 목적이었다.

“아버지, 어머니와 함께 있으면서 조금씩 복음을 전하면 변화할 것이라는 막연한 꿈이 있었어요. 아무런 변화 없이 집에서 한 달 정도를 지내다 아버지께 예수 그리스도를 전했습니다.”

그의 긍정적이었던 생각과는 달리 아버지는 불같이 화를 내며 그를 핍박하기 시작했다. 마을 리더의 형이었던 아버지는 그의 변화에 불쾌함을 표하며 “더 이상 너는 내 아들이 아니다”라고 선포하기까지 했다.

그가 예수를 영접했다는 이야기를 접한 마을에 사는 100여 명의 사람들이 그를 비롯한 그의 가족들을 괴롭히기 시작했다. 3일간의 금식기도의 끝, 그는 성경을 들고 마을을 떠났다. 친구들 또한 그를 만나주지 않았다. “너는 하나님의 자녀니까 하나님께로 가라”며 그를 멸시했다.

“예수님의 고난에 비할 것은 아니지만 참 많은 핍박을 당했습니다. 맞기도 많이 맞았고, 무엇보다 가족들이 저를 외면하니 허탈하기 그지없었습니다. 그런데 지금 생각해보면 사람들을 의지하며 살았던 저의 삶을 오로지 하나님께 맡기고, 바라볼 수 있는 계기가 되었던 것 같습니다.”

마을을 떠나 찾은 도시에서 신앙생활을 시작한 그는 어느 날 문득 하나님이 종이 되어 더욱 체계적으로 복음을 전해야겠다는 생각이 머리를 스쳤다. 담임목사에게 도움을 요청했지만 도움을 줄 수 없다는 답변이 돌아왔다. 그는 다시 무릎을 꿇고 하나님의 응답을 구했다.

얼마 후 하나님이 주신 응답은 우메샤가 신학교에 갈 수 있다는 것이었다. 응답을 받은 날이 토요일이었고, 감사의 뜻으로 그는 지금까지 토요일이면 하나님께 금식기도를 드린다.

학교를 세우자
신학공부 중 한 미국계 한국인 선교사를 통해 한국에서 공부할 기회를 얻게 된 우메샤. 신학대학원 생활을 하면서도 국내에서 고생하는 외국인근로자들을 찾아 복음을 전하기도 했다. 모두 하나님의 은혜에 보답하기 위한 몸짓이었다.

대학원 졸업 뒤 다시 찾은 인도. 그는 학교를 세웠다. 그리고 그 학교에서는 1주일에 3일은 성경공부를 한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인도 정부의 방침에 따라 힌두교, 이슬람교가 함께 있어야 하기 때문에 학교엔 각각 종교를 가진 교사들이 함께하고 있다.

김희병 선교사를 만나게 된 것도 이맘 때. 당시 선교사를 길러내는 학교를 세우고 싶다고 생각하던 우메샤에게 하나님은 김 선교사를 만나게 하셨다.

김 선교사는 “4년 전 한 선교사님의 소개를 받아 인도를 가게 됐는데, 그곳은 교회도 없고, 우상은 많은 곳이었다”며 “더 놀란 것은 가정을 방문하니, 방 안에 힌두 신을 모시는 것이었는데 이들은 종교가 생활이구나 하는 생각을 하게 됐다. 이런 종교심을 가진 사람들을 전도하면 예수님을 잘 믿을 수 있지 않을까 생각했다”고 말했다.

▲ 우메샤 선교사가 운영중인 학교의 아이들이 행사중이다.

그렇게 만난 두 사람은 인도 전체를 품을 수 있는 신학교를 꿈꾸고 있다. 인도에 있는 주(state)가 총 32개인데, 32명의 제자들을 길러내 각 주로 파송하고, 그들이 다시 신학교를 세워 복음을 전하는 것이 이들이 가진 청사진이다.

“세부적으로 많은 선교방법을 생각하고 있습니다. 인도의 사람들에게 하나님을 전할 수 있는 방법이라면 무엇이든 해볼 생각입니다. 지금은 조금 어려울지라도 하나님께 무릎꿇고 모든 것을 맡겼을 때 이뤄주심을 체험했기 때문에 이제는 두려운 것이 없습니다.”

김희병 선교사도 우메샤의 부족한 점을 도와 동역하게 된 것에 감사하고 있다.

“마냥 인도에 대한 마음을 가지고 있었지만, 이제 인도인 선교사 우메샤를 만났으니 하나님께서 저에게 주신 달란트를 활용해 인도를 돕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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