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페트라의 하이라이트 중 하나인 하즈네(Khazneh, Treasury) *


  
페트라(Petra)는 성서와도 관련이 깊은 곳으로, 이전 이름은 성경에 나오는 셀라(Sela)였다.(삿1:36, 왕하14:7, 사16:1) 유다 왕이었던 아마사가 염곡에서 에돔 사람 1만을 죽이고 또 셀라를 쳐서 이곳을 취하여 욕드릴이라고 한 땅(왕하 14:7)이라고 추측하고 있다. 또 이곳은 미디안 왕 레겜이 이곳에 살다가 이스라엘 군대에 의해 죽임을 당한 곳이며,(민31:8, 수13:21)

  애굽을 탈출하여 가나안으로 향하던 이스라엘 백성이 약속의 땅으로 가는 통로이기도 했다. 모세가 하나님의 명령으로 유대 민족을 이끌고, 그 당시 절대 권력을 누리던 파라오의 땅을 벗어나 약속의 땅 가나안으로 향하는 긴 여행 중, 당시 에돔 왕국의 수도이던 이곳의 통행 허가를 못 받아, 멀리 우회하여 느보산으로 갔다고 한다. 이곳에는 모세가 지나갔다고 하여, '무사와디(모세의 계곡)'라고 불리는 곳과 모세의 샘'이라고 불리는 우물이 여러 곳에 있어 전 세계의 순례객들을 불러 모으고 있는 곳이기도 하다.

  그리고 신약시대에 와서 보면, 사도바울이 다마스커스로부터 나와서 피난한 곳으로 알려지고 있으며, 사도 바울의 전도 여행 초기에 그가 아라비아로 갔다가 다메섹으로 갔다고 기록(갈 1:7)된 것으로 보아 이곳은 사도바울이 전도 여행의 처음 시작지로 삼았다는 짐작을 할 수 있다.    



   이와 같이 성서와 관련이 깊은 페트라는 요르단의 수도 암만의 서남쪽 150km, 사해 동남쪽 75㎞지점, 왕의 대로변 에돔과 모압의 접경지역의 작은 분지에 있다. 이 곳은 와디무사(모세의 계곡)를 따라 내려가 높은 절벽들로 이루어진 대협곡을 통과하면 도달하게 된다. 이 골짜기는 길이가 1.6㎞ 가량 되어 성읍을 위한 훌륭한 방어선의 역할을 한 천연의 요새(要塞)로 이 길만 막으면 당시의 어떤 군대도 안으로 들어갈 수 없도록 만들어졌다. 사방이 절벽으로 방어된 이 도시는 마치 지하에 구축된 지하 왕국이 연상될 만큼 신비롭다. 전체적으로는 반경 4~5㎞ 정도의 그리 넓지 않은 지역이지만 당시 왕국의 수도로서는 난공불락(難攻不落)의 요새였을 것이다.  

  페트라(Petra)는 '바위' 또는 ‘반석’이란 뜻으로 기원전 300년 전에 나바티안 족에 의해 세워진 교역중심 요새 도시였다. BC 1400-1200기간 중에는 ‘셀라’로 알려졌으며, 나바티안 왕국 시절에는 ‘나바투’라 불렸고, 후일에는 ‘크세르아셀’ 또는 ‘페트라’로 불리게 되었다고 한다.

  페트라는 BC 600-AD100 에돔족, 나바티안 왕국의 수도였던 곳이다. 나바티안 족은 BC 7세기부터 BC 2세기경까지 시리아와 아라비아반도 등지에서 활약한 아랍계 유목민이다. 이들은 사막 한가운데에 있는 붉은 사암 덩어리로 이루어진 거대한 바위 틈새에 도시를 건설하여 일세를 풍미했던 것이다. 그러나 이 도시는 AD 106년에 로마군에 의해 점령, 제라쉬(Jerash)~다마스커스(Damascus)를 잇는 실크로드의  중심도시로 수많은 대상들이 들러 가는 상업의 요충지로 한때 크게 번창했었으나, 6세기경 발생한 지진으로 폐허가 되어 여러 세기 동안 잊혀져 있었다.

  그러다가 이 망각의 도시가 잠에서 깨어난 것은 1812년  요한 루트비히 부르크 하르트(Johann Ludwiq Bruckhardt)라는 스위스의 한 젊은 탐험가가 현지인 안내자의 안내를 받아 이 웅장한 유적을 발견하였다. 그는 다마스쿠스에서 카이로로 향하는 탐험 도중 페트라에 엄청난 유적이 숨겨져 있다는 말을 듣고 아랍인으로 변장한 후 이곳을 찾아 나섰다가 잊혀진 도시를 발견하였고, 이후 그의 여행기를 통해 페트라가 유럽을 비롯한 전 세계에 알려지게 되었다. 그 후 1996년 미국 오하이오(Ohio) 대학 탐사팀에 의하여 일부 발굴이 시작되어 오늘에 이르고 있다.  

  영국의 시인 존 버곤 신부는 페트라를 묘사하여 '영원한 시간의 절반만큼 오래된, 장미빛 같은 붉은 도시'라고 말한 적이 있다. 그만큼 협소한 통로와 협곡으로 둘러싸인 바위산을 깎아 조성된 페트라의 건물들은 대부분 암벽을 파서 만들어졌다.

   매표소가 있는 입구에서부터 약 2~3㎞ 정도 들어가면 비로소 천연의 요새 입구에 다다르게 된다. 천연 요새의 입구까지는 말을 타고 들어갈 수 있다.  시크(Siq, Water Way)라고 하는 좁은 협곡이 계속되고 협곡 양쪽으로는 물이 이동될 수 있는 경사 수로가 계속된다. 이 협곡은 정말 폭이 좁고 높은 곳은 캄캄할 정도다.

   여기서부터 붉은 사암(砂巖)으로 이루어진 거대한 바위 틈새의 좁고 깊은 골짜기를 따라 한참을 가면, 하즈네(Khazneh, Treasury)라고 하는 페트라의 하이라이트 중 하나인 나바티안 인들이 살았던 수도의 심장부이다. 정말 어떻게 저 토록 정교하게 절벽의 암반을 조각하였는지 알 수가 없을 것 같다. 그리고 협곡과 마찬가지로 조각된 궁전을 한 컷의 카메라에 담기는 도저히 불가능하다. 궁전으로 생각되는 헬레니즘 양식의 건물 정면은 커다란 암벽을 파서 만든 것으로 정면에 있는 문으로 들어서면 복도가 나타나고, 이 복도를 따라가면 암벽을 파서 만든 방들이 나타난다.

   주변 산의 깎아지른 듯한 절벽에는 자연석을 파서 만든 나바티안 인들의 무덤들이 화려하게 보존되어 있고, 암벽을 깎아 만든 각종 신전, 무덤들이 자연소재 그대로의 색상과 구조로 남아 있어 보는 이에게 감탄을 자아내게 한다. 이것들이 만들어진 시기는 주로 나바테아안의 시대인 BC 4세기 경부터이고, 로마령으로 합방된 후(105년) 로마인들이 많은 건설을 했는데 그 흔적으로 돌로 된 포장도로, 공중목욕탕, 야외극장, 그리고 상수도 시설이 현대 도시 못지않은 형태를 갖추었으나, 이제는 그 유적들이 유령처럼 버티고 있다.

   현대의 수수께끼 유적의 하나로 남아있는 이곳은, 이집트의 피라미드와 더불어 고대 세계 7대 불가사의의 하나이며, 1985년 12월 6일 페트라는 유네스코에 의해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되었다.  최근에는 1989년 영화 '인디아나 존스-마지막 성배(Indiana Jones and the Last Crusade)'의 촬영 장소로 유명해졌다.

   이곳의 고대 세계는 우리의 상상을 뛰어넘는 거대한 것들이며, 유럽 문명의 골간을 이룬 성서의 무대이기도 하다. 그러나 지금은 잊혀진 지구상의 변방에 불과한 지역으로 남아 있는 곳이며, 황량한 광야에는 남루한 베두윈족들이 염소 떼를 한가히 몰고 있는, 마치 고대세계에서 시계가 멈춰 버린 것 같은 느낌을 준다.